세종대왕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생활경제/혼잣소리|2008. 6. 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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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천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세종대왕릉에 잠깐 들렸습니다.
릉은 다른 왕들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유적지 입구에 그분이 이룬 업적에 관한 것들이 잘 정리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규모나 정밀도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사실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진: 컴파서블
설명: 문화재청 세종대왕 유적지  http://sejong.cha.go.kr

세종대왕 동상. 무언가 할 말이 많으신 듯... 이넘들아 제발 국민들 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종대왕 동상.

해시계의 일종으로 햇빛에 의해 내측에 있는 영침의 그림자로 시각을 알 수 있으며, 세종시대에 만들어져 널리 사용되어 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앙부일구(해시계)

일성정시의는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기기로 세종19년(1437년)에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멋찐 용 있음 함 나와 봐!"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성정시의.

간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로서 1432년(세종14년) 목제간의를 만들었으며, 1438년(세종20년)에는 청동으로 제작하여 경회루 북쪽에 있는 간의대 위에 설치하여 태양, 달, 오행성, 항성들의 위치를 관측하고 또한 정밀한 시간을 측정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간의

세종 19년(1437년) 경복궁내에 만든 혼상(渾象)은 오늘날 천구의(天球儀)와 같이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와 황도좌표의 각도로 둥근 구면(球面) 위에 표기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천문기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혼상.

소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고,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관측 기기로서 세종16년(1434년)에 창제하여 경복궁 천추전과 서운관에 설치하였다.
이것은 간의(簡儀)보다 크기가 작고 이동할 수 있도록 더욱 간편하 만든것으로 적도좌표계와 지평좌표계로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인 관측기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소간의.

세종 19년(1437)에 제작된 해시계 중의 하나이다.
천평일구의 구조는 시반, 용주, 남북을 잇는 가는 줄, 받침대, 남.북쪽의 못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평일구.

세종 19년(1437)에 창제된 일종의 해시계이다.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그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하루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현주일구.

규표는 일년의 길이가 정확히 몇 날인가(365일 4/1날)와 24절기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다.
수직으로 세운막대 표가 정오에 만드는 해의 그림자 길이를 수평으로 눕힌 눈금이 있는 규로 재서 가장 긴 때를 동지,
가장 짧은 때를 하지로 정했다. 동지와 하지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날을 봄에는 춘분, 가을에는 추분이라 하고
이 4절기를 뺀 나머지 20개 절기를 그 사이에 약 15일 간격으로 배열한 것이다.
하루 중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은 때는 정오이며 규를 설치한 방향은 정확하게 그 지점의 남북방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규포.

세종 19년(1437)에 제작한 해시계의 하나로 지남침이 없이도 남쪽 방향을 결정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천문기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남일구.

혼천의는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관측기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15년(1433년)에 처음 만들어진 기록이 있으며, 그 후 에도 거듭하여 다수 제작하였으나 전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 혼천의는 국보 제230호 송이영의 혼천시계(헌종 10년, 1669년)의 혼천의 부분을 2.5배 확대하여 복원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혼천의.

적도의는 조선시대 후기에 남병철이 제작한 것으로 이는 세종시대로 부터 꾸준히 변화 발전해 온 혼천의와 간의를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한 끝에 가장 손쉽고 편리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고안된 천문기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적도의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여 기상을 예측하기 위하여 바람 깃발 즉 풍기를 세운 풍향기의 대이다.
이 풍향기 석대는 맨 위에 깃대를 꽂을 수 있는 깊이 33cm, 직경 11cm의 구멍이 파여 있고 여기에 좁고 긴 깃발이 달린 깃대를 세워 깃발이 날리는 방향과 세기를 관측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풍기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의 위치를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1,467개의 별을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그린 천문도(天文圖)이다.
이것은 국보 제228호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본떠 제작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상열차분야지도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세종 23년(1441)에 장영실 등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우량계이다.                                                      

세종대왕은 땅속에 스며 든 빗물의 깊이를 재어 강우량을 측정하던 종래의 불완전한 방법을 철로 주조한 원통형
우량계를 발명, 강우량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확히 측정케 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측우기

세종 16년(1434년)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이 자격루는 중종때 개량되었으나 지금은 복잡한 자동시보장치가 없어지고 3개의 파수호와 2개의 수수통만 남아 덕수궁에 보존(국보 제229호)되어 있는 것을 본떠 제작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격루

세종 23년(1441)에서 세종 24년(1442)에 걸쳐 제작, 서울 청계천과 하천수위 측정계이다.
수표의 발명은 측우기와 함께 강우시기가 7~8월에 치우쳐 있는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을 통계적으로 파악하여
치수에 이용코자 애쓴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종때의 처음 만든 수표는 나무 기둥에 척.치.푼의 길이를 표시하고 돌기둥 사이에 묶어 하천에 세운 목재였으나, 그 후 석재로 개량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수표

소나무 두 그루가  다정한 연인을 보는 듯 하여 한 장 찰칵!

사용자 삽입 이미지소나무

제사 지내는 재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종대왕릉 재실

세종대왕릉 가는 중간 넓은 잔디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종대왕릉.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참고:세종대왕 유적지
정치ㆍ경제ㆍ사회ㆍ역사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조선 4대 세종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동쪽 방은 왕후의 능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능으로 1450년(문종 즉위)에 왕이 죽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의 합장릉이다. 영릉 지구에는 17대 효종 부부의 영릉(寧陵)도 위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종대왕릉


반대편에 효종대왕릉과 인선왕후릉이 있습니다.
어제는 세종대왕릉을 둘러보느라 너무 시간을 뺏겨 그 쪽은 들리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저 뿐만 아니라 다들 세종대왕릉을 보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마 효종대왕께서 많이 섭섭해 하실 것 같습니다.
이글을 보신 분들은 세종대왕릉에 가게되면 반대편 효종대왕릉도 한 번 들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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